‘냉면연구회’는 최근 가게 된 특이한 모임 중 하나다. 냉면연구회가 모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단톡방에 누군가 언제 어디서 냉면을 먹자고 하면 스케줄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평양냉면을 먹는다. 아니, 연구한다.

냉면연구회에는 냉면연구회 회장인 친구의 초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작년 5월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난 날이었을 것이다. 냉면연구회라는 게 있다고? 나도 냉면 좋아하는데. 우리는 을지면옥에서 만나 냉면과 소주를 먹은 다음 신도시에 갔다가 을지로 공구골목을 걸었다. 그날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을지면옥이 문을 닫았다. 우연히 갔던 것이 마지막이었다니…. 이렇게라도 한 번 더 맛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이런 얘기를 하며 기다리다 보니 온다고 했던 냉면연구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이 도드라지는 평양냉면과 국물이 촉촉이 밴 얇은 수육과 빈대떡을 연구하고—누군가 빈대떡은 역시 을밀대가 최고라는 말을 했다—, 근처 독일 올드 펍 같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 피데기와 짝태 연구까지 마쳤다—누군가 피데기는 청양마요가 아니라 초장마요에 찍어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거의 일년 반이 지나서야 냉면연구회에 처음 나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냉면연구회 회장도 공사가 다망했기 때문에 내가 나간 것이 2회차 냉면연구회*였다. 최근 추석 연휴를 맞이해 우래옥에서 세 번째 연구회를 진행했는데 가지 못했다. 회사 근처에 훌륭한 냉면집이 많으니 조만간 한 번 제안해 볼 생각이다. 오늘 냉면 드실 분 계신가요?

삶이 복잡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때에는 평양냉면을 먹으면 좋은 것 같다. 맑고 감칠맛 나는 국물에 담백한 면이 씹히는 식감이 별미인 평양냉면은 보기에도 먹기에도 깔끔하다. 만드는 데에는 많은 정성이 들어가는지 몰라도 먹기만 하는 데에는 복잡할 것이 없다. 간단한 찬들로 테이블 구성도 심플하고 메뉴판도 단출하다. 그런데도 명성이 있는 평양냉면집은 늘 사람들로 복작인다. 오랜 전통이 있는 식당 특유의 베테랑 직원들을 만나는 것도 독특한 경험이다. 자리 안내부터 주문과 서빙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이날은 평양냉면을 먹고 마른안주를 연구해도 복잡하게 꼬인 마음이 쉽게 단순해지지 않았다. 바닥에 장독을 심어 익힌 동치미 국물이 달짝지근하고 시원했는데도 그랬다. 오랜만에 안 마시던 소주를 마셨고 기분이 좋아질 정도로 취했는데도 그랬다. 평양냉면으로 풀 수 없는 마음은 며칠 뒤 밤늦도록 감상을 나누게 된 퍼포먼스**를 본 날에도, 다섯 시간의 긴 러닝타임 동안 진행된 강도 높은 연극***을 보고 나서도 그대로였다.

저녁부터 기침이 끊이지 않고 두통과 열에 시달리다가 월요일 아침 문 열자마자 방문한 병원에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병가를 얻었다. 8만 명을 기다려 겨우 예매한 고향 가는 기차를 취소했다. 첫 삼일은 자다가 깨서 죽을 조금 먹고, 약을 먹고 약기운이 취해 다시 잠에 드는 것을 반복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리 누워있기만 한 것이 몇 년 만인지. 오일 째가 되자 추석 당일이었고, 몸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 밖에 나가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오산이었다. 저녁이 되니 다시 쉴 새 없는 기침이 시작되었고 며칠을 또 누워 지냈다. 주말에는 부모님이 오셔서 고향에 내려갔지만 집밖을 나오지는 못하고 쉬었다.

장장 9일을 쉬기만 하다 지나보냈다. 긴 연휴에는 긴 여행을 가거나 하루 걸러 하루 꼴로 어딘가에 나가기 바빴는데 몸이 아프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큰 행사를 치르느라 한 달 내내 야근을 하며 몸을 많이 혹사하긴 했다. 행사가 끝나고도 회포를 푸느라 매일 밤 돌아다니며 에너지를 펑펑 써버리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몸이 힘들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에 놀랐다. 조금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브레이크를 걸고 쉬기 시작한 것은. 친구가 앞서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그게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모르는 척을 하기 위해 계속 집 밖으로 나돌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그것대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례적인 긴 휴식 끝에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생각을 할 여유가 생기자 2주 동안 글을 발송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 상태가 이런데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재미있는 글을 써낼 수도 없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에세이는 무엇인지, 왜 이걸 써서 보낸다고 했는지 회의가 들었다.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감사함과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욕심, 솔직해야 한다는 자존심과 쓴다는 것에 있어서의 자유 사이에서 혼란스러웠다. 홀린 듯이 들어간 동네 책방에서 에세이란 무엇인가 따지는 책****을 사서 읽었다.

“이런 글을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글 이름이 무려 에세이다.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 추정하거나 감행하는 만큼,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높은 글. 재난의 틈에서 무언가를 구해낼 가능성이 있는 글. 형식, 스타일, 표면적 짜임새의 차원에서 무언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그리고 이로써(누군가는 “이로써”에 이견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유의 차원에서도 무언가를 이룩할 가능성이 있는 글. 감정의 차원에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글.” (15-16쪽)

그 책을 쓴 저자도 에세이를 정의하기에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래도 ‘실험하는 글’이라는 표현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실험하는 글’로 기억을 했는데 실제로 책에 적힌 것은 ‘시험하는 글’이었다.) 단 한 문장으로 정의되지 않기에 에세이라는 형식이 끌렸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쓰는 실험을 포기하지는 않기로, 실패로 끝날지 몰라도 무언가를 구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쓰기로, 다시 노력하고, 또 시도하고, 계속 시험하기로, 나를 지키면서 쓰는 행위도 지키는 방향으로 계속 쓸 것을 다짐했다. 다짐으로 끝나는 것은 별로 실험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2회차 냉면연구회는 을지로 남포면옥에서 개최되었다.

**<몸들의, 사이>, 윤푸름 안무,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2023년 9월 22일 관람.

***<이 불안한 집>, 김 정 연출, 명동예술극장, 2023년 9월 24일 관람.

****<에세이즘 Essayism>, 브라이언 딜런, 김정아 옮김, 카라칼.